밀리터리/육상장비

"마우스 전차" 독일 제국의 초중전차.

신참! 2014. 8. 24. 20:27

 

 

 

 

 

 

마우스 전차.. 이 전차는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나치독일의 총통 히틀러의 의해 제작되게 된다. 당시 소련군의 높은 성능과 물량을 보고 기겁을 했고 히틀러는 소련 전차들을 모두 박살낼수 있는 최고의 전차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1942년 초 그루프사는 티이거 마우스 VK7001과 로베 VK7201전차의 디자인을 개발하게 되지만 3월 초 군에게 이 전차들보다 더욱 무겁고 높은 화력을가진 전차를 만들어 내도록 지시했고 하지만 당시 연구진은 도면이나 이론 상으로는 프로젝트를 작성해 보았지만 단 한번도 실제로 시제 차량을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방치되어 있던 후속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하고 포르쉐사의 포르쉐박사함께 이 마우스 전차의 기반이 되는 기술연구를 진행하였다. 3월 21일경 포르쉐 박사는 VK10001 포르쉐 전차 라는 개발 도완을 만들어 내게 되었고 군과 100t 급 전차 개발 계약을 받아내게 된다. 하지만 이내 4월 15일에는 100t 가량의 전차에 100발 이상의 포탄이 적제 되어야 된다는 개발 요구사항 통보를 받게 되고 한달이 지난 후 다시 절대 파괴되지 않는 120t 급 전차를 개발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최소 1943년 초봄 까지는 실전배치가 가능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고 최소 150대 정도의 전차가 양산 되어애 하며원형 전차가 만들어 지고 난 후부터는 한달에 5~10대 정동의 생산량을 유지 하여야 한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연구진 멘붕이 전차의 초기 원형 이름의 경우 VK10001 이나 205 포르쉐 타입 맘모스로 불리었다 하지만 맘모스라는 이름의 경우 비밀유지를인식 했는지 금세 "마우스" 즉 "쥐"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포르쉐 박사는 6월 23일 마우스 전차의 디자인을 수정하여 포탑의 디자인을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1943년 1월 히틀러는 150대의 마우스 전차 양산을 중지 시켰다. 하지만 마우스 전차 개발과 생산은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1943년 12월 한대의 원형 마우스가 생산 되었지만 테스트 결과는 그야말로 형편 없었다 1호 시제 차량은 포탑이 없었는데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1944년 3월 쯤에 시제 2호 차량이 생산 되었다 1호 차량에 비해서 많이 개선 되었지만. 1호 차량에서 발생한 기동불가를 1200마력의 엔진으로 해결될줄 알았던 기술진은 1200마력의 디젤 엔진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1944년 7월 중순까지 새로운 차체를 개발하려 했지만. 1944년 7월 27일 전면적인 생산 중단과 함께 전량 폐기 명령을 받게 되었다. 8월에는 마우스 전차에 대한 모든 생산과 개발은 종료되어 버렸고, 8월 19일 포르쉐 박사 에게 더 이상 마우스 전차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필요 없다는 군의 통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2호 차량은 9~10월 동안 마우스 전차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 하였다. 또한 마우스전차의 수송을 위한 14륜의 철도이송 장비도 만들어 졌다. 하지만 1호 전차의 경우 소련군에 의한 노획을 피하기 위해서 이공하다 얼마 가지도 못해서 퍼져 버렸고 그대로 소련군에 노획 되었다. 또한 2호 차량의 경우 독일군이 스스로 자폭해 버렸고 공장에 남아있던 2호 마우스 전차의 파편들과 포탑을 가져가 복원시겨 지금은 1호자 차체에 2호차 포탑을 전져서 모스크바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자. 마우스 전차,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2차대전 당시 가장 강력한 초중전차 이다. 하지만 히들러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욕망과 함께 사라진 탱크라고 본다. 하지만 당시에 시제품이라도 나온 전차들 중에는 가장 강하고 무겁고 크며 대구경의 전차포를 장비한 전차라 볼수있다. 주포의 경우 당시 최고의 화력을 자랑했던 128mm의 주포를 사용 하였으며 부포로는 가장 평균적이고 흔한 75mm 의 부포를 사용하였다. 일단 더럽게 큰 몸집으로 그만큼 강한 방호력을 보여 주었다 일단 포방패를 포함한 전면 방어력은 460mm 가 넘었으며 포방패를 제외한 단순 방호력 또한 260mm를 보여주었다. 측면 또한 200mm 방호력을 유지 했으며 예나 지금이나 전차들의 공통된 약점인 전차 포탑의 상판장갑 또한 당시 돌아다니던 미군의 주력 전차인 M4 셔먼의 전면장갑인 60mm 를 육박했다. 또한 후면이나 차체 바닥또한 장갑을 두텁게 발라서 강한 방호력을 보여주었고 그로인해 개발과정중 무게가 계속 상승하며 전차의 자체 무게는 188t 에 달하는 무게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시대에 존제하던 칼이라 불리던 자주박격포 또한 124t의 무겁고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우스 전차와 64t에 달하는 무게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아마 전면을 장갑으로 떡칠한 전차와 화력 투사력에 중심을 둔 자주포의 차이가 되지 않을까?. (물론 판저2000은 제외) 여튼 그로서 무거운 차체로 인해 마우스 전차의 엔진은 잠수함용 1,200마력의 엔즌을 개조하여 용하려 했지만 알다시피 개발이 지체 되면서 1.800마력 짜리 항공기 엔진에 전기모터를 결합하여 하이브리드 엔진을 만들어 사용 하였다. 하지만 필자가 알고있는 지식으로는 연료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하게 되면 보다 나은 연비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사실 마우스 전차에서는 예외일것 같다. 본론으로 그로인해 엔진 효율성이 증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상속도로 20km/h의 아주 저속의 주행능력을 보여주며 20km/h도 못나와 13km/h 가 나왔다는 말도있다. 그 엄청난 중량을 지탱하기 위해서 1m 가 넘는 광폭 궤도를 사용 했지만 기동중에 진흙탕에 빠져 포탑만 삐죽 나와있고 차체는 모두 진흙 아래로 무친 사진도 있다. 마우스 전차의 정식은 Panzerkampfwagen VIII  Maus. 8호 전차라는 먕칭을 가지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마우스 전차"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나의 일화로 7호전차인 뢰베라는 전차가 마우스 전차보다 먼저 개발에 착수했지만 이내 마우스에 밀려 개발이 취소 되었고 마우스에게 이런 정식명칭이 붇게만든 이유라고도 한다.

 

독소전쟁이 과열 되면서 소련도 KV-1등 같은 그렇다할 중전차를 내놓기 시작했고 전차전에서 최고를 달리던 독일의 전차들도 골치가 아파지시작 그런 전쟁 상황을 본 힛!총통은 "어이쿠 이게 뭐야!" 라며 새로운 전차개발을 지시 하였다 그것이 이 마우스 전차의 탄생의 시작 이였고 히들러의 불가능한 야망과 함께 무너진 전차의 시작이였다. 일단 히틀러의 지시로 매드 앤지니어들의 회사로 유명한 무기생산 회사인 크루프,나중에는 그 포르쉐사까지 참여하여 개발되었으며 개발이 진전 되면서 포탑은 크루프사의 포탑을 사용하고 차제는 포르쉐사 측의 차체를사용하였다. 그렇게 두 회사의 포탑과 차체가 결합된 마우스 전차를 120~150대 가량 양산하라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뛰어난 외계인을 고문하는일의 독궈놀러지로도 너무 과한 스팩이였고, 실패와 연구를 거듭했고 그로인해 개발은 한없이 지체되기 시작했다. 또한 엎친데 겊친격으로 지금까지 사용하던 부품이나 기술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오직 처음부터 개발하여야 하는 사황 이였다. 주포를 포함에서 엔진 현가장치 조향장치 차체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부품이나 기술은 모두 무시하고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했고 고로서 호환성? 생산성? 그딴거 없었다.

 

 

군에서는 1942년 까지 시제 차량이 완성 되기를 원했지만 1호 시제 차량은  포르쉐+크루프+알케트 이 3사가 모두 참여 했음에도 불가하고 프로토타입 1호 차량이 완성되어 등장한 시기는 군에서 원했던 시기보다. 2년이나 뒤인 1943년에나 완성되어 테스트 하고 있었다. 또한 포탑의 완성도 늦어져서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 모의 콘크리트 포탑을 언져서 테스트하는 형편 이였다. 간혹가다 1호 차량이 소련군에 노획 되어 박물관에 전시될 당시 소련에서 직접 모의 콘크리트 포탑을 올려 전시 했다고 알리고 있는 자료들도 있는데 그것은 오류 사항이다. 마우스 1호 시제 차량은 완성단계 부터 콘크리트 포탑을 적제하고 있었다. 여기서 1호 시제 차량이 끝까지 포탑이 안달렸냐는 의문을 제시할수 있는데 말하지면 "그렇다" 1호 시제 차량은 끝까지 포탑이 적제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개발이 않되거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포탑 개발 납품 업체간의 알력으로 인해서 포탑을 후에 다 완성 했는데도 납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로 1호 시제 차량은 소련군에 노획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고 2호 차량의 파편들이 노획되고 포탑이 복원되어 콘크리트 포탑이 제거되고 2호 시제 차량의 포탑이 적제될때 까지 모의 콘크리트 포탑을 유지하게 되었다. 결국 1944년 까지 단 2대의 차량만이 생산 되었고, 그것도 1호차량은 포탑도 없는 더미로... 2호차 완성품도 요구성능을 충족하기 위해서 2배의 가까운 188t 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으며 무거운 중량과 차체 때문에 수많은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었다. 그로서 사실상 1대만 완성되는 그것도 힘들게 결과를 맞이했고 변덕스런 히틀러는 1944년 중순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초중전차에 대한 개발과 생산을 완전히 놔버렸다.. 

 

 

사실, 히틀러도 이 전차가 완성되면 대서양 방벽에서 이동하는 병커로 사용하거나 동부전선에서 개때처럼 몰려오는 T-34 전차를 방어할 대전차 벙커 역활로 사용하려 했지만, 자신이 아무리 봐도 너무 불가능한 것 이라고 생각 했는지 프로젝트를 중단 시켰지만 시제차량 2대에 관해서는 계속 보수나 개발을 진행 하라고 지시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첫번째로 부어진 돈이 어마어마 했거든..;;

 

 

마우스 전차의 특지 으로는 일단 거대하고 육중한 몸체 때문에 터널등을 지나갈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높다..ㅇㅇ 정 지나가고 싶다면 포탑을 제거하고 지나가야 하는데 붇혀놨던 포탑을 다시 분리하고 터널을 지날리가 있을까. 또한 마우스 전차는육중한 몸체와 중량으로 거의 모든 다리는 건널수 없었고 포장된 도로도 주행하게 되면 궤도 자국이 움푹 파이며 주변에 있던 주택의 창문이 모두 께져 버리는 충격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마우스는 도하 방식을 잠수도하 방식으로 사용 했는데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 하이브리드형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잠수 도하에 더욱 효율 적이다. 라고는 하는데 이 잠수도하에서 모든 전차의 차체는 방수 처리를 하고 전기모터 엔진을 이용해 도하를 진행 하는데 전기모터가 작동하는 방식이 연료엔진에서 전기를 생산해 작동하는 방식이다. 고로 하나의 마우스 전차가 도하하기 위해서는 2대의 마우스 전차가 필요히고 한대는 도하하기 원하는 방향에서 전설을 끌어다. 도하 하여야 하는 전차에게 전기를 생산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엔진을 이용해서. 그렇지 않다면 직접 발전기를 가져와 전기를 생산하여야 한다.

 

 

덤으로 크기에 비해 적재할 수 있는 탄약량이 적다. 주포인 128mm 용 탄약은 고작 32발에 불과하며, 오히려 부포인 75mm 포탄이200발이라는 이상한 탑재량을 자랑하는데, 이는 하이브리드 엔진팩등의 시설로 인해 차체 내부의 공간이 의외로 좁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마우스가 실제로 전투에 돌입하면 IS-2같은 강력한 적의 중전차 같은 강력한 목표에만 주포를 사용하고, 나머지 전차나 장갑차등의 상대적으로 약한 표적에는 부포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예상이 나왔는데, 해당 부포는 75mm긴 하지만 4호 전차초기형에 탑재된 75mm 단포신 포를 개량한 물건인지라 위력면에서는 4호 전차 후기형이 장착한 75mm 48구경 장포신 포보다 약하기 때문에 실제로 도움이 될 지는 의문시되던 상황이었다. 종합하자면 적 전차에게 포위당하면 주포의 탄약부족으로 인해 돌파하지 못하고 두들겨맞다가 그 자리에서 돈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우스 전차는 일단 개발되었다는 자료는 많이 있으나 2차대전 이후 행방이 묘연하여 서방에서는 환상의 초중전차로 알려져 있었지만 냉전이후 러시아의 쿠빈카 전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러시아측의 설명에 의하면 베를린 근교에서 프로토타입 1호차는손상없이 소련군에게 노획되고, 프로토타입 2호차는 베를린 전투시 소련군과 교전을 위해 이동중 퍼져서 독일군의 손에 의해 자폭,소련군이 노획한 뒤 그 포탑과 파편을 재생하여 함께 노획한 1호차의 더미 포탑을 떼내고 얹은 것이라고 한다. 쿠빈카라는 동네는 크바 바로 오른쪽에 위치하므로. 모스크바 방문시 쿠빈카 박물관을 보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