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가깝고 미국은 멀다. 매우 간단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전반적인 외교나 안보 정책수립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혹은 이들이 고려해야할 만한 영향은) 매우 크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혹자는 중국과 미국의 정치체계, 혹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정치적 (혹은 철학적) 이념의 차이를 고려사항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또는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고려를 분석차원에 포괄시킬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다.
중국은 아시아 대륙에 위치해 있다. 한국과 매우 가까운 위치이다. 반면 미국은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원래 명칭처럼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잡고 있다. 직선거리로 서울과 베이징은 1000km도 되지않는다. (정확히는 955km) 반면 미국은 가장 가까우리라고 생각되는 호놀룰루가 7300km 거리에 있고 로스 엔젤레스와 서울간의 거리는 9500km에 달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속에서 한국은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예측과는 다르게 경제적 상호작용의 심화는 결코 안보딜레마를 해소시키지 못했다. 아마 인간의 본성이 작동하는 방식식, 혹은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방식이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는 이상, 신뢰와 상위기구의 부재로 인한 이 문제가 해결될일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국제기구 역시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특히 국가들간의 사활적인 이익-안보 혹은 생존-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상위기구로써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고전적인 세력균형을 대체하지도 못하였다.
이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필자가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룬 우크라이나 사태를 들 수 있다. 유럽과 러시아는 상당한 경제적 상호작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경제불황은 러시아로부터 쏟아지던 투자와 관광객의 중단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이나 기능주의자들의 이론과는 다르게 경제적, 문화적 상호작용은 러시아의 사활적 안보를 둘러싼 문제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국제기구나 경제제재 역시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러시아가 경제제재에 굴복한 것인지 얼마 전 우크라이나 반군이 대대적 공세로 많은 지역을 얻은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화의 시대에도 사활적 이익을 향한 투쟁은 피로써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필리핀과 중국과의 관계이다. 세계은행의 필리핀 담당 경제학자 로지어 반 덴 브링크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 둔화되는 것은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서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이 0.52% 하락하게끔 한다. 이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 둔화될 때마다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0.4% 둔화되는 것에 비해 커다란 수치이다. 또한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성장률의 1% 둔화가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에 0.74%의 둔화를 초래하는데 이를 고려해 보았을 때, 중국은 동아시아 전체의 0.74%에서 0.54%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필리핀의 총 수출의 14%, 필리핀의 수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제품의 55%가 중국으로 향한다.
이와 같이 필리핀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두 나라간의 사활적 이익의 충돌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카보로 섬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중국은 스카보로섬을 포함한 남사군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선포한 상태이다.
한국 역시 중국과 상당한 경제적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한 수준이 아니라 거대하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한국은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며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현재 한국의 중추적인 외교정책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틀린 주장이다. 다르다고 표현하기보다 틀리다가 더 옳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실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정책결정자들은 정치적 상호관계와 경제적 상호작용을 혼동하고 있다. 한국에 가장 많은 직접투자를 하고 있는 지역은 단연코 중국이다. 2위는? 작년 기준으로 유럽이다. 그러나 유럽이 한국에 직접투자하고 있는 만큼의 정치적 이익을 가지고 있는가?
한국의 외교정책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올바른 지정학적 척도이다. 중국은 한국과 한 대륙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리적으로도 매우 근접하여 위치한다. 이는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이로 인한 군사력의 발전이 한국에게 있어 사활적 이익의 훼손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과 중국은 육로로 이어져 있다. 육로는 중국의 육군에 한국에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을 제공한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은 21세기라고요! 라고 하고싶은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그러나 이것이 우크라이나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은 중국에 비해서 매우 약한 국가이다. 한국의 영토는 중국의 한 성에도 미치지 못하며, 한국의 인구 역시 중국 입장에서 보면 코웃음 나오는 수준이다. 경제력 역시 중국이 압도한다. 군사력은 경제력과 인구에 기반한다. 한국은 아무리 자신의 한계안에서 발전을 이룩해도 중국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이 우크라이나 꼴 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땡!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다르다. 우크라이나의 온전한 생존은 미국의 사활적 안보가 아니었다. 지난번 포스팅을 참고해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핵을 제외하고서 미국에게 위협이 전혀 되지 않는 나라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내전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그 증거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내전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방은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말에 비해 극도로 미세한 움직임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다르다. 즉 본질적으로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과 우크라이나간의 차이보다 중국과 러시아간의 차이이다. 중국은 현재 경제규모와 국방예산에서 세계 2위의 국가이다. 또한 인구는 미국의 4배에 달한다. 군사력이 인구와 경제력에 기반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고려해볼 때, 중국은 미국에게 위협이다. 그것이 사회주의 국가라서, 독재체제라서가 아니라 그것의 경제성장과 인구가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두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국제정치가 계산기처럼 딱딱 알맞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그렇다. 현재 이슬람국가에 대한 지상군 투입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용대비효용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은 엄청난 물자와 인력을 소비한다. 정책결정상의 오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베트남과 2000년대의 이라크에서 미국은 잘못된 계산을 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 대로이다. 실수는 잊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시연간에 일어났던 일이 미국에서 곧 잊혀질 것 같지는 않다. 즉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의 무력투입을 매우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스스로 중국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미국은 지리적 거리와 태평양으로 인해 중국으로 지상군을 투입하여 무력을 투사하는데 있어 상당한 장애를 겪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게 장래의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요소가 합쳐져서 현재의 한미동맹이 유지되고 한국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쇠락하게 된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다른 강대국, 잠재적 패권국이 나타나기 전까지 손을 때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고려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Pivot to Asia 어디에서 아시아로 Pivot 된다는 말인가?
따라서 한국의 외교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의 존재가 없을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사태를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계속해서 설파해야한다. 아시아를 완전히 차지한 중국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사실 이 정도는 미국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현재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책결정자들은 경제적 상호작용과 정치적 상호관계를 헷갈리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게 한국이 중국에게 편승(Bandwagoning)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중국과 경제적 상호작용을 위해서 애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혹자는 왜 한국이 미국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 왜 중국에게 편승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못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면 이참에 중국에 붙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이 선택은 두 가지 이유로 한국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1. 미국이 더 강하다.
현재 미국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해군과 공군력은 압도적이며 경제 규모 역시 미국이 훨씬 더 크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은 더 필요하다.
2. 중국이 더 가깝다.
그렇다면 미국보다 중국이 더 강력해진 뒤에는 중국에 붙는 것이 이득이 아닐까?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중국의 확장을 저지해야 한다. 왜 한국이 미국의 위협을 대신 처리해야하나? 그것은 한국이 확장의 당사자가 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해 어떠한 대륙에서 지역적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던 국가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확장을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영토나 인구도 있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 주변의 국가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에 편승한다면 이 운명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는 절대로 올바른 판단이 될 수 없다. 중재를를 의탁할 상위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무정적부적 성향이 국가들간의 절대적인 신뢰를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에 편승하는 순간, 한국의 이익은 중국의 이익에 뒤쳐지게 된다. 중국은 한국에게 마음대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즉 미국의 포격을 가장 정통으로 맞게될 것이다. 또한 중국이 한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혼자서는 절대 중국에게 위협이 될 수 없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르게 미국은 태평양 반대편에 있다. 물론 미국도 한국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경우 한국의 이익은 미국의 이익과 합치될 수 있다. 왜나하면 미국은 중국에 육군력을 투사하기 위한 도구로써 한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태평양 저 너머에 있기에 한국과 일본, 남아시아의 국가들을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분쟁에 있어서 한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협상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사소한 이익과 한국의 사활적 이익이 충돌한다고 해도 이는 중국의 정책결정권자가 그들의 사소한 이익을 포기하려 하지않는 한 한국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반면에 미국은 중국과의 충돌에 있어서 한국을 필요로 한다. 왜나하면 태평양 저 건너에 있으므로. 따라서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저지할 경우 한국과 미국은 각자의 이익을 조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게 한국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은 중국에게 붙었다 미국에게 붙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한국이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면 미국은 인도나 파키스탄, 베트남과 같은 다른 국가들을 선택할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이것이 한국이 미국에 매달려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 상하이와 육상으로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은 한국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뻗대도 좋다는 말 역시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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