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밀리터리/해상장비

"그라프 체펠린" 나치독일의 비운의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 나치독일의 최초의 항공모함이 될수도 있었던 함선이며 비운의 함선일 뿐더러 히틀러의 헛된 꿈과 함께 사라진 하나의 걸작이였습니다. 사실 독일제국은 1차대전 당시부터 항공모함을 건조할 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고조될수록 독일제국의 피해는 늘어났습니다 결국 중심함들이 영국해군에 털리고 독일제국의 무제함 잠수함 작전으로 지나가는 배들 다 털고 다니다 미국 사람들이 대거 타고있던 유랍선 개박살 미국 참전까지 가져다 줬죠.. 병신짓 참 많이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독일제국은 패하게 되고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서 독일은 모든 중심전력 함들을 폐기처분 그리고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Ausonia 이것이 최초로 항공모함의 개념이 확립된 함선 이였습니다. Ausonia는 위 시각자료에서 볼수 있듯 당시에 사용하던 보통 상선을 개조하여 비행기가 뜨고 내리며 적 함선을 공격할수 있도록 만드는것 이었습니다. 당시에 함제기는 물론 복엽기를 사용했고요. 하지만 1차대전이 종전을 맞이 하고서 Ausonia 는 폐기처분 되었고 위에서 설명했다 시피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 됩니다. 그리고 2차대전이 시작 되면서 나치독일 히틀러의 명령으로 1935년 Z계획 이라는 플랜아래 대대적인 수상함 증축 계획에 착수하게 됩니다. 여기에 항공모함4척을 건초하는 계획도 들어가 있었고 그것중 "항공모함 A" 라고 임시로 불리우고 있던 항공모함이 그라프 체펠린 이였습니다. 1936년 정식으로 항공모함 건조가 시작 되었고 1937년 12월 경에 진수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1938년 "항공모함 A" 는 정식으로 그라프 체펠린 이라는 함명을 받게 되었고 계속해서 기타 장비들을 건조하는작업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서론을 말하자면 이 그라프 체펠린 항공모함도 안그래도 자원과 인력 자금이 부족한 나치독일 제국에 부담되는 계획 이였습니다. 마치 장교들이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유보트를 많이 생산 하자고 하던 장교들의 말을 뿌리치고 기어이 비스마르크 전함을 만들어낸 히틀러의 일화처럼 말이죠. 상당히 비 효율적이고 불운한 함선이라고 합니다. 실상 4대의 항공모함이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Z계획이 완료 되었다면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알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점은 독일제국은 Z계획을 의도한 대로 진행 하였다고 하더라도 계획을 끝마칠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독일제국의 상황은 점점 악화 되어갔고 실제로 얼마 못

있어 소련군이 그라프 체펠린 항공모함이 있는 곳까지 밀고 내려왔을 정도니 말이죠. 하지만 확실히 중간에 Z계획을 가지고 우와좌왕 하지만 않았다면 최소한 지금보다야 나았던 결과를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긴... 참고로 중간에 4척 생산에서 2척 생산으로 하강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간혹가다 독빠들이 나치독일까지 찬양 하면서 "그라프 체펠린은 종이장갑 영국 낙오자 일본 놈들이 찌질하게 화약폭발식 케터필러를 사용하고 있을떄 우리는 미국과 같이 증기식을 썻다능!!" 이라고 자위들 하는데 중요한건 당시 나치 독일제국은 함선건조 능력이 후달려서 항공모함은 더더욱 고로 일본과 기술제휴를 받아서 만들어 놓은게 그라프 체펠린 이놈이다. 기술제휴를 위해 킬 항구에 들어왔던 항공모함이 미 진주만을 박살낸 "아카기" 이고... 독일제국 빠들이 "그라프 체펠린는 저급한 일본과 영국과는 달리 미국과 같이 증기압력식을 썻다능!!" 하는데 사실 진짜로 케터필러는 증기압력 식을 사용했는지 증명해줄 정보들도 부족하고, 꾸준히 해군을 키우던 영국이 보유하지 못했던 증기압력식 케터필러를 사용했다는데는 솔찍히 말해서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만 "증기압력식도 썻다는 말이 있고, 어디까지나 여지만을 남겨두자" 라는 정도로 알아들어 주면 될것같다.[각주:1] 

 

 

진수식을 끝마친 뒤에 계속해서 개발이 진행되며 1940년 말에 취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함제기로 BF 109T, 융커스 Ju 87C, 87E 등을 사용하고자 했지만 "괴링" 그놈이 함제기로 사용될 비행기들을 내줄수 없다며 배째라 들어누웠고 공군에서 가져오는것도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일단 공군기들을 개조해 사용하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그라프 체펠린의 구조를 약간 많이 개량하여야 했다. 그런즉슥 1940년 4월에 결국 건조중지 명령이 떨어졌고, 그라프 체펠린는 도크안에 묵인체로 장비되어진 모든 함포나 대공포 기관총등 노르웨이로 옴겨지며 해안방어 용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완전철거 명령까지 떨어졌지 노르웨이를 독일이 점령하게 되면서 해안선 방어라는 목적으로 겨우 살아 있을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 3분의 1은 해체수준 그렇게 노르웨이에서 야마토 못지않게 잉여하게 보내었다

하지만 1942년 "킬"로 돌아가게 되며 다시 전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유는 즉슥 독일의 수삼함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의 항공모함이 절실히 필요 했으며 히틀러도 충분히 항공모함의 위력을 실감했다..뭐.. 사실 예전에 실감 했지만 줏대가 없어서 문제였지.. 여튼 이렇게 다시 건조가 시작되었고 순조로이 건조가 진행 되면서 거의 85% 가량 완성한 가운데 1942년 12월 13일에 있었던 바렌트 해 해전에서 독일 주축이 복날에 개맞듯 털리자 이제 빡쳐서 멘탈이 깨진 히틀러는 더 이상 해군에 대한 기대를 접었는지 라프 체펠린의 건조를 전면 중지시키고 예전에도 한번 그랬듯이 함포와 대공포 기고나총등은 가져가고 그라프 체펠린는 결국 잉여하게 생황하며 고작 임무는 목제른 나르거나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목제는 잘 날랐다고...(;;;;) 결국 그렇게 잉여로운생활을 하다. 결국 스테틴으로 옴겨지고 얼마 않있어 소련군이 몰려오자 독일군은 자치시켜 버리게 된다.. 하지만 종전뒤에 소련은 깊이 침몰하지 않은 그라프 체펠린를 끌어올려 가져가 다시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해수로 인해 많은 부품들이 복구불가 상태로 망가여 버렸고 전체적으로 문제도 많았으므로 PO-101 이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목표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라프 체펠린 안에다 많은 양의 폭탄을 집어넣고 사격목표로 사용하여 침몰 시켰다고 하는데 보통 사격목표로 사용하는 함선들은 잘 가라안지 않도록 코르크 등으로 속을 채운다고 하는데 많은양의 폭탄을 체웠다는데 의아하다 추측해 보자면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이거나 이제 막 시작 될 냉전을 의식한듯 미국의 항모를 얼만큼의 공격으로 침몰 시킬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고 앞으로도 알수 없을것이라 본다.

 

 

좀 매정하게 말하자면 과연 성공적으로 오나성된다 하더라도 얼마나 효과를 보여줄수 있을지 모르는 사실이다. 영국이나 미국에게는 그저 한줌의 전력일 뿐이며 거기에 한번도 항공모함을 건조해 본 경험이 없는 독일이 건조한 탓에 설계 방향부터 문제가 있었고 그닥 효과가 없었을것이라고 생각되는 바이다.... 조금만 되짚어 보아도 미군이나 일본이 초기에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것처럼 항공모함 자체가 직접 구축함등을 상대하려고 대구경포를 실었었고 또한 함체가 설계상 결함이 있어 다시 건조할때는 벌지를 함 측면에다 더덕더덕 붇이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독일제국빠 들이 "그라프 체펠린는 영길리나 일본놈들 보다 함체의 장갑아 단단 하다능!" 이라고 자위해댄 이유가 항공모함이 불필요하게 구축함을 상대한다는것을 전제하에 장갑을 단단하게 만든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수있다

즉 당시 그라프 체펠린는 극 초기의 독일 항공모함 건조 개념이었고 당시 운영되던 영국,일본,미국등 항공모함과는 많이 뒤떨어진 발상이나 개념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볼수 있다. 독일 자체의 기술은 좋다. 하지만 그 기술 자체도 스스로가 습득하고 스스로가 발전 시키며 자국의 기술로 확보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배울수 있는 점은 헛된 틀러의 망상과 그와함께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불운의 항공모함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자국의 기술개발과 기술자국화에 소홀이 하며 퇴보한 교리가 남아있는 한국군에 대해서도 조금 쓴 지적이 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하나의 기술 자체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기술을 개발시키고 개량 시키고 개조하며 자국산 기술로 만들어 완벽하게 확보할수 있지 않다면 전제가 되더라고 선두의 자리에서 여러 기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이 할수 없을 것이다. 그저 단일적인 기술에만 목매여 눈이 멀게된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한국만은 그런 나라들의 뒤를 따라서는 않된다.

 

  1. 영국 해군은 증기압축식 케터필러를 사용하였다. 가장큰 의문점은 과연 정말로 그라프 체펠린가 증기를 사용했을까 이다.. 솔찍히 말해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증기를 사용했다면 140km/s의 속력을 보여 주었을것 이라고 말하고는 있다.. [본문으로]